.
.
.

AI를 잘 사용하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질문을 잘해야 좋은 답을 얻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초기에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곧 AI 활용 능력처럼 여겨졌다. 역할을 부여하고,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원하는 결과물의 형식을 지정하고, 예시를 보여주라는 방법들이 쏟아졌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어떻게 질문해야 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AI와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질문을 잘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AI를 나의 동반자로 만들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질문 하나보다 나를 이해하는 AI가 더 강하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AI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CEO들을 대상으로 AI 시대의 변화에 대해 강연하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을 넣으면 좋을까?”
AI는 꽤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생성형 AI의 발전, 산업별 활용 사례, 업무 생산성의 변화, AI 에이전트, 조직 혁신, AI 윤리와 위험 같은 내용을 제안할 수 있다.
틀린 답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해도 비슷한 답을 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AI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분야를 연구해왔는지, 어떤 청중을 자주 만나는지, 기술 자체보다 산업과 사회의 변화를 중요하게 보는지, 이전 강연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질문에 적어준 몇 줄이 판단의 거의 전부이다.
그런데 AI가 나를 이미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오래 연구해왔는지, 어떤 사례와 설명 방식을 선호하는지, 최근 무엇을 조사하고 어떤 강연과 글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같은 질문에도 훨씬 나에게 맞는 제안을 할 수 있다. 질문은 똑같다.
달라지게 한는 것은 ‘AI가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다.
.
마7:7을 기억하라
AI와 대화할 때 나는 가끔 ‘마7:7’을 떠올린다.
성경 마태복음 7장 7절의 유명한 말씀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생성형 AI가 등장한 뒤 우리가 AI를 사용하는 모습도 놀랍도록 닮아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는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찾아달라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이 나오면 다시 질문한다. 더 좋은 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고쳐 또 두드린다.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AI에게 물었다. “너는 세계 최고의 마케팅 전문가야”라고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조건을 세세하게 붙이고 원하는 결과물의 형식을 지정하며 더 좋은 답을 얻기 위한 프롬프트를 연구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AI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물으면서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이야기했을까?
AI에게는 “나에게 맞는 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려주지 않았다. 왜 이 질문을 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말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짜고짜 “내가 좋아할 만한 여행지를 추천해줘”라고 묻는 것과 같다.
상대는 유명한 여행지를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도시보다 자연을 좋아하는지, 관광지를 빠르게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지, 박물관이 중요한지 음식이 중요한지 모른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평균적인 추천이다.
AI도 마찬가지다.
나를 모르는 AI는 ‘나에게 좋은 답’보다 ‘일반적으로 좋은 답’을 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의 마7:7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리고 말하라.
여기서 ‘말하라’는 AI에게 더 많은 명령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를 말하라는 뜻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라.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라.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말하라. 왜 이 일을 하는지 말하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도 이야기하라.
질문만 하지 말고 AI와 맥락 있는 수다를 나누라는 것이다.
.
프롬프트와 단순 질문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맥락은 AI가 나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배경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맥락이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맥락이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어떤 결과를 좋은 결과라고 판단하는지도 맥락이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과 싫어하는 방식, 과거에 했던 선택과 그 이유도 맥락이 된다.
같은 “이 글을 고쳐줘”라는 질문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이 된다.
회사 동료에게 보낼 이메일인지, CEO에게 제출할 보고서인지, 신문 칼럼인지, 책의 원고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독자가 누구인지, 글쓴이가 어떤 문체를 추구하는지에 따라서도 결과는 달라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맥락은 내가 누구인지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AI에게 어떤 수준으로 생각해주기를 원하는지도 알려준다.
내가 AI와 대화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 가운데 여러분과 다른 하나가 있다.
요청사항 또는 질문 마지막에 “ooo을 조사 분석해.”라는 글귀를 넣는 것이다.
이 ‘조사 분석해’라는 단순한 단어들이 질문에 붙으면 AI의 답변을 위한 작업의 수준이 달라진다. 단순히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신 자료를 확인하고, 다른 시장과 비교하고, 원인과 반대 가능성을 검토한 뒤 판단을 수행한다.
탐색 → 검증 → 비교 → 원인 분석 → 판단
이라는 하나의 작은 연구 과정을 수행한다.
‘조사 분석해’라는 표현 속에 내가 AI에게 기대하는 지적 작업의 수준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찾아봐’, ‘조사해’, ‘조사 분석해’는 비슷해 보여도 내가 AI에게 기대하는 사고의 깊이는 다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특정 표현 자체가 아니라 내가 어떤 수준까지 탐색하고 검증하고 생각해주기를 원하는지를 AI가 알아가는 것이다. AI를 잘 활용한다는 것은 멋진 질문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AI에게 어떤 수준의 지적 작업을 원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 역시 맥락이다.
그런데 매번 “조사 분석해”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AI와 계속 대화하면서 “나는 단순한 요약보다 원인을 알고 싶다”, “내가 제시한 가설이 틀릴 수도 있으니 반대 증거도 검토해달라”,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은 최신 자료를 확인해달라”, “가능하면 수치로 비교해달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대화가 쌓이면 AI가 이해해야 할 것은 개별 질문을 넘어선다.
‘이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라는 맥락이 만들어진다.
바로 이것이 프롬프트와 맥락의 차이다.
프롬프트는 이번 질문을 바꾼다.
맥락은 앞으로의 질문을 바꾼다.
프롬프트는 한 번의 일을 잘 시키는 데 유용하다. 맥락은 AI가 나와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지를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더 쉽게 말하면 이렇다.
프롬프트는 질문을 만드는 기술이지만, 맥락은 관계를 만드는 기술이다.
AI가 ‘무엇을 해달라는가’를 이해하는 것과 ‘왜 그것을 원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바로 여기에서 AI와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
그래서 나는 AI와 ‘맥락 있는 수다’를 떤다
나는 AI와 수다를 많이 떤다. 정확히 말하면 맥락 있는 수다를 많이 떤다.
여기서 수다는 아무 이야기나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떤 경험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대화’보다 ‘수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대화라고 하면 왠지 목적이 분명해야 할 것 같다. 질문도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명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항상 그렇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아직 잘 모르겠는데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는 것 같아.”
“네가 방금 말한 것은 내 생각과 좀 다른데?”
“왜 그렇게 판단했지?”
“이 표현은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들어.”
“지난번에는 A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B가 맞는 것 같아.”
이런 말들은 완성된 프롬프트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수다 속에서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가 드러난다.
완성된 프롬프트에는 결과에 대한 요구가 담긴다.
맥락 있는 수다에는 나의 의도와 가치관이 담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AI와 이야기하기를 미룰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결과에 대한 반응이다.
AI가 만든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자.
“별로야. 다시 해.”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글은 너무 교과서적으로 들려. 나는 독자가 설명을 듣는다는 느낌보다 자기 문제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해.”
둘 다 수정 요청이지만 AI에게 전달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첫 번째 말에는 결과에 대한 평가만 있다.
두 번째 말에는 나의 판단 기준이 들어 있다.
좋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좋아”라고 끝내는 대신 “이 사례가 먼저 나와서 좋아”, “이 문장은 내가 생각하던 것을 정확하게 표현했어”,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그런 수다가 쌓이면 AI가 알게 되는 것은 단순한 취향 몇 가지가 아니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맥락이다.
그렇다면 맥락 있는 수다는 많이 나눌수록 좋은가?